1. 로알드 달의 작품
딸이 어렸을 때 얻어 놓은 영어원서들이 있다. 그중 로알드 달이라고 쓰여있는 책들이 있었어서 로알드 달이라는 작가가 있구나 하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1996년 마라윌슨 주연의 영화 마틸다가 나왔을 때는 귀여운 여자아이가 식탁에서 디저트를 먹는 장면의 포스터만 많이 봐본 적이 있을 뿐 어떤 내용의 영화인지는 전혀 몰랐다. 얼마 전 겨울방학 동안에 딸이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다가 신작 뮤지컬 영화 마틸다를 틀더니 매일 반복해서 보는 것이다. 나도 집안 정리하며, 설거지하며 곁눈질로 보다가 재밌는 것 같아서 저녁밥을 먹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보게 되었다. 알고 보니 로알드 달의 작품이었고 아는 작가라 괜스레 반가웠다. 책 마틸다는 1988년에 미국과 영국에서 발매되었다고 한다. 그가 쓴 어린이 소설은 대부분 악한 어른들을 물리치는 어린이들의 승리로 끝나는데 이는 그가 기숙사 학교를 다니던 시절 가혹한 학교생활을 경험한 것으로부터 비롯된 이야기라고 한다. (찰리의 초콜릿 공장도 로알드 달이 원작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2. 배우들의 미친 연기력
원작 내용도 모르고 본터라 트런치불 교장이 양갈래로 머리를 땋은 한 여자아이의 머리를 잡고 투포환처럼 빙빙 돌려서 던지는 장면과 남자아이에게 체벌로 왕케이크를 먹이는 모습은 솔직히 조금 충격적이었다. 현실이었다면 엄연한 아동학대이고 극악무도한 행동이기 때문에 초등 저학년 딸아이와 같이 봐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 딸도 보면서 "엄마, 저렇게 하는 건 학대 아니야?" 하고 말하는데 학대로 잘 인지하고 있다는 것에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대 맞지! 저 교장은 미친 사람이야~!"라고 대답해 주고 우리는 미스 트런치불 마음껏 욕하면서 보았다. 장르가 코미디, 판타지, 뮤지컬로 되어있는데 코미디 연출이겠거니 하고 보았지만 그래도 실제로 상상이 되다보니 마음 한켠이 불편한 건 어쩔수 없었다. 악역 미스 트런치불 연기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찾아보니 엠마 톰슨이라는 매우 낯이 익는 배우였다. 처음엔 이게 같은 사람 맞나 해서 검색을 잘못한 줄 알고 두세 번 다시 검색해 볼 정도였다. 생김새도 완전 다른 사람처럼 변신하고 망가지는 연기까지 완벽해서 정말 대단한 배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틸다 역할의 알리샤 위어라는 배우는 얼굴도, 목소리도 너무 예쁘고 표정, 딕션, 노래도 완벽해 보였다. 천재임이 분명했다. 마틸다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오디션을 봤을까. 부디 영화계의 좋은 어른들을 만나서 훌륭한 배우로 성장하면 좋겠다.
3. 뮤지컬 마틸다의 OST
영화 초반에 모든 아기들은 기적이라는 내용의 Miracle이라는 노래가 나오면서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들이 한 명씩 나오는데 너무 귀여웠다. (아시안 아기가 안 나온 것은 조금 아쉬웠다.) 옆에 있는 딸을 보며 맞아, 기적이었지. 지금 이렇게 함께 있는 순간도. 그렇게 감격을 하면서 나도 우리 부모님에게 기적 같은 존재였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When I grow up이라는 노래가 나올 때는 눈물을 참고 참다가 우리 딸이 "나는 어른 되기 싫은데.. 엄마가 영원히 같이 살고 싶어"라고 말하는데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만큼 엄마가 좋다는 말이기도 할테니 고맙기도 했지만, 어른들이 사는 세상은 더 힘겨워보였던 걸까 라는 생각에 조금 슬프기도 했다. 나는 어렸을 때 어땠었지.. 모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어른이 부럽기도 하고 피터팬처럼 영원히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고 왔다 갔다 했었던 것 같다. 마지막에 아이들이 해방의 기쁨을 느끼고 Revolting Children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춤추는 모습은 너무 신나고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단역 포함 저기 출연하는 아이들 한명 한명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 거며 얼마나 높은 경쟁률을 뚫은 아이들이었을까. 다들 노래와 춤실력이 장난 아니었다. 또 학교 상급생들이 학교생활에 겁을 주는 내용의 School Song이 나오는데 알파벳 라임의 한글화를 너무 잘해서 놀랬다. 알고 보니 황석희라는 유명한 번역가가 번역했다고 하는데 어쩜 이렇게 재치 있고 센스 있게 번역을 하셨을까 감탄했다. (그리고 이름을 보고 여자분인 줄 알았는데 남자분이어서 한번 더 놀랐다.) 노래에 A부터 Z까지 알파벳이 들어가는데 알파벳 타이밍과 동일하게 한국어로도 알파벳 발음이 들어간다. 이런 건 AI도 못할 것이다. 번역가가 의외로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를 본 후 현재 뮤지컬도 공연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연기간이 2022.10.5~2023.2.26로 이제 한 달 정도 남았는데 고민이 되었다. 이왕이면 가까이서 보고 싶은데 VIP석이 15만원, R석이 13만원이다. 남편 빼고 딸이랑 둘이서만 봐도 30만원. 가격을 보니 선뜻 예매가 되지 않고 멀리 서는 보기 싫고. 이번에는 패스하고 언젠가 또 기회가 있을 테니 딸이 조금 더 컸을 때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니면 마틸다 영어 원서를 다 읽으면 뮤지컬을 보기로 약속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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