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은 아가씨 이후로 6년 만에 나온 박찬욱 감독의 11번째 장편영화이다. 그동안 박찬욱 감독의 전작인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 등에서 보였던 야하거나 잔인하거나 충격적인 장면이 없이 잔잔함과 여운을 남기고 있어 의외의 박찬욱표 영화이라고 느껴진 작품이다. 산에서 벌어진 변사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가 사망자의 아내와 만난 후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제75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으로,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1. 의심이 짙어질수록 깊어지는 관심
형사인 해준(박해일)은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을 담당하게 되고 사망한 남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와 만나게 된다. 탕웨이는 헤어질 결심에서 한국말이 서툰 중국인으로 등장한다. 서툰 한국말은 이 영화를 더욱 미스터리하게 다가오게 한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남편의 죽음 앞에서도 서래는 특별한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경찰은 보통 유가족의 반응과 다름을 보이는 서래를 용의 선상에 올리고 해준은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 탐문과 신문, 잠복수사를 통해 서래를 관찰하다가 점점 관심을.. 그리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한편, 좀처럼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서래는 상대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해준을 대한다. 진심을 숨기는 용의자, 용의자에게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는 형사. 그리고 그들의 헤어질 결심.
2. 안개
박찬욱 감독의 말에 의하면 정훈희의 안개는 영화 '헤어질 결심'의 모티브였다고 한다. 정훈희는 박찬욱 감독의 가장 좋아하는 가수이고 이 곡은 제일 좋아하는 한국 가요 중 하나인데, 우연히 유튜브 자동 스트리밍 중 트윈폴리오(송창식, 윤형주)가 이 곡을 커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거기서부터 이 영화의 모든 것이 출발했다고 한다. 영화의 엔딩크레딧에는 정훈희와 송창식의 함께 부른 듀엣곡 안개가 흘러나온다. 정훈희와 송창식은 이 영화를 위해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고 박찬욱 감독은 놀라운 경험이라며 평생의 꿈이 이루어졌다고 말했다고 한다. 손으로 잡을 수 없지만 뚜렷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안개. 그는 안개처럼 모호한 상황 속에서 사랑하고 헤어지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현대에 만들어진 사랑 영화들은 감정을 드러내는데 솔직하고 대담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해준과 서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거나 스킨십을 하거나 달콤한 대화의 장면은 없다. 단지 해준은 서래에게 요리를 해주고 서래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해준에게 편히 잠을 잘 수 있게 해주는 존재가 되어준다. 둘은 함께 있을 때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결말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되었어요' 해준이 한 말이었지만 정말로 붕괴된 사람은 서래였던 것 같다. 해준이 헤어질 결심을 했을 때 서래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고 그녀는 안갯속에서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길을 간다. 해준에게 영원한 미결로 남기 위해서, 영원한 사랑이 되기 위해서 그녀만의 헤어질 결심을 한다. '안갯속에 외로이 하염없이 나는 간다.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애타게 그리는 마음.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다오.' 절망 속에서 간절하게 바라는 사랑, 순수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안개'의 가사이다.
3. 통역앱, 스마트워치, 음성녹음
한국어가 서툰 중국인 서래는 쏟아낼 말이 있으면 통역 앱을 쓴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대화를 나누고 스마트워치로 음성녹음을 하거나 스마트폰 어플로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는 등 디지털 기기의 사용이 영화의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시각화하여 보여주는데 이 부분 역시 영화의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였다. 더 이상 손편지가 아닌 스마트워치와 음성파일, 파파고에도 애틋함을 담을 수 있다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기계이다 보니 의도치 않게 단어의 전달이 잘못되기도 했다. 해준은 서래에게 녹음된 내용이 뭐냐고 묻는다. 음성녹음에 담긴 해준의 말은 통역 앱 대신 서래의 마음에 한번 더 걸쳐 해석이 된다. '당신 목소리요. 나한테 사랑한다고 하는'. 그러나 해준은 되묻는다. '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했냐'라고. 아마 디지털기기의 요소들이 이런 장면을 위해 쓰인 게 아닐까 한다. 여자 주인공이 한국말이 서툰 중국인 여인인 것도 말이다. 현대적 요소와 외국인 설정을 세련되게 연출한 박찬욱 감독. 엔딩이 너무 슬프지만 한 번만 보기엔 아까운 영화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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