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9세의 나이에 우디 앨런이 발표한 영화이다. 뉴욕 태생인 그는 뉴욕을 무대로 한 영화를 많이 만들었는데 <블루 재스민> 역시 뉴욕의 화려함을 관전할 수 있다. 초상류층의 삶을 살던 한 여인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극빈해진 현실 속에서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에 갇혀 살다가 점차 정신을 잃어가는 비참한 모습을 그리는데 이를 케이트 블란쳇이 열연했다. 이 영화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하여 수많은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한 순간에 나락으로
재스민은 사업가 할과 결혼한 후 뉴욕에서 화려한 인생을 살고 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결혼했기 때문에 생전 일을 해 본 적이 없고 매일같이 파티와 쇼핑을 하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부와 사랑을 모두 가진 그녀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해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할이 금융사기에 불법을 저지른 것이 발각되면서 상위 1%의 인생은 산산조각 나버린다. 남편 할은 감옥에 들어가고 의붓아들 대니는 대학교를 자퇴하고 떠나버린다.
돈보다 중요했던 자존감과 신뢰관계
남편이 감옥에 들어간 것은 다름 아닌 재스민이 할의 비리를 FBI에 신고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남편이 금융사기꾼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은 아니었다. 남편을 믿었고 남편이 가져다주는 서류를 읽어보지도 않고 사인을 해주었다. 나중에 눈치를 채게 되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만족스러운 결혼생활, 호사스러운 생활, 평안한 일상을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었을 때는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된다. 남편은 외도를 들키고 용서를 구하는 게 아니라 이혼을 요구한다. 스쳐가는 바람이 아니라 이혼을 원할 정도로 새로운 여자에게 제대로 빠진 것이다. 재스민이 정말 돈만 좋아하는 속물이었다면 큰 금액의 위자료를 받고 이혼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대 내연녀가 갓 스무 살이 넘은 여자라는 사실에 더욱 자존심이 상하고 배신감에 치가 떨렸을 테다. 더군다나 그녀는 남편의 전처에게서 낳은 아들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주었었다. 그녀는 결국 남편을 신고하고 자신까지 같이 추락해 버린다. 남편을 신고하면 자신도 빈털터리가 될 것을 몰랐을까. 아마 알았지만 자신의 자리를 누군가에게 뺏기고 싶지 않고 결혼의 언약을 배반한 남편이 새로운 사랑과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죽어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결국 재스민은 돈보다는 자존심, 관계, 사랑, 신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쉽지 않은 홀로서기
결혼생활을 끝내고 하루아침에 땡전 한 푼 없는 빈털터리가 된 재스민은 여동생 진저 집에 얹혀사는 처지가 된다. 하지만 함께 살기엔 그동안 살아왔던 삶이 너무도 다르다. 재스민은 과거 뉴욕에서의 호화로운 삶을 잊지 못하는 한편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 치과데스크에서 접수원으로 취업도 하고 저녁에는 컴퓨터 수업을 듣는다. 겨우 병원 일에 익숙해지나 싶더니 병원 의사가 추행을 한다. 결국엔 이런 노력들도 다 부질없고 파티에서 괜찮은 남자를 찾는 것이 이 시궁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우아하고 고상하게 살고 싶지만 현실은 따라주지 않는다. 그렇게 그녀는 파티에 갔다가 재력과 지성, 외모까지 겸비한 외교관 드와이트를 만나게 된다. 힘들게 얻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그녀는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거짓은 거짓을 낳는다. 거짓은 결국 들통나버리고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된다. 평생을 경제활동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갑자기 홀로서기란 쉽지가 않다. 경제적 자립. 어렸을 때부터 익혀야 할 행복한 삶의 필수 요소인 것 같다. 내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나를 꾸며주던 포장들이 다 벗겨졌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있으려면 나 스스로에게 능력과 내공이 탑재되어 있어야 함을 깨우친다. 그리고 재스민을 한심하게 볼 것도 욕할 것도 없다. 그녀는 나름 최선을 했고 어떻게든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발버둥 치는 그녀가 안쓰럽게만 느껴진다. 어쩌다 보니 일찍 결혼하느라, 남편이 부자라, 일할 필요한 없던 터라 경제적 자립할 기회를 놓쳤다. 거기다 남편은 바람둥이.. 돈이 좀 없어도 의리 있는 사람, 내 곁에 오래 있어줄 남편감이 낫다.
미련은 미련한 것
옛 시절에 대한 미련. 누구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 미련 때문에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추억을 간직하는 것은 좋지만 집착하면 마음의 병이 된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이다.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우리는 그 망각을 잘 활용해야 한다. 적당한 망각이 있어야 새로운 삶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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